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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분류

-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박과 압박이 타인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얼마나 고통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겪은 일들을 남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진리처럼 생각하고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시대는 바뀌고 있고 생각들도 바뀌고 있다. 지금은 나 역시도 변화를 인정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들처럼 인정을 하지 않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 힘들다 너무 힘들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불안하다. 일을 할 때도, 쉴 때도 불안하다. 편하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꿈을 길게 꿀 수 있게 되었다. 미분류

 오지않을것 같았던 날

 마치 군대 전역하는 날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그런 날이 왔다.

 이제는 꿈을 길게 꿀 수 있게되었다는 랩 가사가 생각이 나면서도

 길게 생각하고 길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게 좋은거 같다.


 



이야기 미분류


오랫동안 이 블로그가 방치되어 있었다. 사실 말하자면 이 블로그를 더 이상 안하고 방치해 둘 생각이었다.
더 이상 SNS로 자기 감정을 배설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을 뿐 더러,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오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더 이상 어떠한 정보도 얻기 쉽지않아져서 자정작용을 상실한 SNS 때문에 이 블로그에 이런 저런 글을 쓰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많이 바빴다.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고민이 많았던 나날들이었다. 늘 고민 많은 편이지만 지난 1년은 고민, 분노, 좌절이 뒤 섞인
순간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30대의 중간 지점에 들어선 지금 30대의 절반은 마냥 웃으며 돌이켜 볼 수만은 없는 나날들이었다.

수도관이 터져서 모텔에서 잠을 잘 정도로 추운 날이 엊그제 같은데 훈훈한 바람이 불고 3월이 왔다. 이런거 보면 계절의 변화는 참 신기하다.
아무튼 겨울은 너무 싫다. 원래는 좋아했는데 이런 겨울은 사양하고 싶다.

올해부터 NBA 리그패스를 끊어서 보고 있다. 우리나라 돈을 대략 12만원?? 정도 되는거 같은데 사실 낮에 경기를 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적적한 저녁에 켜서 보는 재미도 있고, 주말 오전에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그리고 이제 MLB도 결제를 했다. 야구의 시즌이 오고 있다. 빨리 야구가 보고 싶다. 야구가 시작하고 끝나는 것 만큼
한 해의 흐름을 말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기에

시간아 흘러라~~~






이야기

1. 재지팩트를 들으면서(정확하게는 "하루종일"을 들으면서 지만) 약간 80년대 느낌이 난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본 가수 안리의 곡을 샘플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80년대 일본음악을 찾으려 노력하는데...

2. 사실 옛날부터 80년대 일본 문화에 관심있었다. 하지만 관련 키워드를 찾기 쉽지 않아보였고, 거기다가 언어의 문제가 
    있다보니.. 거품경제의 절정에 있던 80년대 일본의 문화는 화려함 그 자체였다.(물론 MTV의 미국이나 우리나라도 뒤진
    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다보니 그 화려했던 시절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금 80년대 시티팝을 찾아봐야겠다.

3. 한동안은 힙합을 멀리하고 락만 들었던 시절이 있었고, 락을 멀리하고 EDM을 가까이 하던 시절이있었다. EDM이 소모되는
    방식을 보면서 많은 답답함을 느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EDM들은 흥미가 나지 않는다. 락도 마찬가지, 그 강렬한 
    기타 소리, 드럼 소리도 이제는 별 느낌이 없다.

4. 서재페에서 Tower of Power를 본 것만을도 돈이 아깝지 않았다. 1시간 20분 정도?? 간 그들이 뿜어내는 
    펑크리듬은 사람들을 들썩이기에 충분했고, 다소 촐싹거리는 듯 했던 멤피스 출신의 보컬 아저씨는 매력이 넘쳤다. 
    할배들이 "Do U Wanna Get Funk"할때 솔직히 좀 지렸다. 내년에 결성 50년이라는데 아마 이제는 안 오겠지??

5. 그 덕에 그리고 더워지는 날씨덕에 다시금 펑크를 찾아서 들으려하고 있는데, 유투브에서 나오는 DJ 믹스셋들만 해도
    나에게는 충분한 감상거리를 제공한다. Shout Out To Dam-Funk!!!!


6. 11년 이후, 정확하게는 한 13~14년 이후 듣고 싶은 음악들만 듣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여전히 많은 음악들을 
    찾아듣고 있었다. 다만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뿐이지, 존나게 듣다보면 뭐 한 두개는 들어오겠지, 그러면 그게 
    남는거고

7. 어서 지산과 팬타포트가 왔으면, 아 그리고 서울쏘울페스티벌인가 그것도 고민 좀 해봐야겠다. 평들이 안좋기는 
    한데, 그래도 워낙에 짱짱한 양반들이 오니...

 

 

간만에 이야기

간만에 들어와 글을 쓴다.
사실 글을 쓸까말까 고민을 많이했다. 별이유는 없고 모든게 귀찮아서이다.
하고싶은게 많았다.
옛날엔 커피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고, 칵테일을 배우고자 주말마다 남대문 시장에 올라가서 칵테일용 술들을 샀었다. 음악과 영화는 양 옆에 끼고 다니는 애인들과 같았고(물론 애인은 없다.) 인생의 모토를 말하라면 재미를 찾아서 재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봄 여름엔 야구를, 겨울에는 농구를 보면서 스포츠도 관심을 가지고 틈틈이 정치도 관심가지고 뭐 아무튼 여기저기 찔러보는 삶을 살고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쳤다. 그냥 흔히들 말하는 일에 치여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흔하디 흔한 중년, 한남충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냥 귀찮았다. 
휴가를 내고 영화를 볼까했지만, 예매를 안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싫었다. 그냥 돌아왔다.
야구를 켜놓았지만 보지않았다. 스마트폰을 만지다 잠들었다. 배가 고프니 나와서 밥을 먹고 다시 들어와서 누웠다.
날씨가 화창해서 한바퀴 산책을 하려고 생각했지만, 배가 부르자 이내 귀찮아서 집에 들어왔다. 햇빛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주말에 어디 놀러갈 생각마저 사라졌다. 맥북을 들고 카페에라도 가는게 지난 겨울의 꿈이었지만 집에서도 노트북 되는데 왜 나감?으로 바뀌었다. 
평일엔 회사에서 진이 빠지니, 휴일에는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나만의 생각에 잠겨있게 된다. 항상 생각만 하고 공상에 빠질 뿐,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귀찮았고, 지금 아무 생각하지않고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로 휘갈기고 있다.

귀찮음으로 가득찼던 주말이 지나고, 이제 다음 휴일에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지 라고 마음먹지만 또 다음 주말이 되면 집에서 눕기 바쁠거 같다. 벌써 가을이 왔으면 하는 마음에 가을 옷을 찾아보고 있다. 하지만 그때가면 집에 틀어박혀 있을거니 굳이 이 옷들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모르겠다.

사실 고민이 많다. 하고싶은것만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한다면 하고 싶다. 할 수 있다. 나 혼자만 생각하기도 바쁘지만, 다른것도 신경을 써야한다. 신경써야할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게 어른이 된다는것인지 모르겠다. 항상 고민만하고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항상 후회하면서 시계태엽을 뒤로 다시 조금만 돌렸으면 마음먹을 뿐이다. 이제는 머리도 굳고, 글도 눈에 잘들어오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도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머리가 굳어가는 느낌, 나이가 먹어가는 건가보다. 난 아직 하고 싶은게 많고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성당에 대한 이야기

 믿기 어렵겠지만,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은 대건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세례명을 딴 것으로 성으로 따지만 김씨나 이씨 수준의 흔한 성이다. 내가 어떻게 세례를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 어렸을때,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녔고 그렇게 유아세례를 받았고, 할머니 어머니가 성당에 나가니까 나도 그냥 따라 나간 수준이었다.  돌이켜 보면 유아세례를 받았던거 같았다. 

 여담이지만, 당시 내가 다니려던 유치원은 굉장히 인기가 많은 유치원이었다고 한다. 경쟁률이 주택 청약  수준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유치원 입시원서를 넣었지만, 당연히 떨어졌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던 찰나에 오후반을 추가 편성해서 내가 추가로 합격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너는 운도 많이 따라주는 아이이니 잘 풀릴거라고 말하셨지만, 그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유치원 합격과 군대 자대배치에 내 모든 운을 다 쓴거였구나 라고 생각했다.

 집이 유복하지 않았지만, 성당에만 가면 유독 금수저 대접이었다. 당시 할머니는 남성동 성당의 돈 킹과 같은 대부였다.(대모가 더 정확하겠지만..) 신부님이하 임원진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고기 대접을 해주셨고, 지금도 천원을 넣는 천주교 사람들의 싸대기를 날릴 수준의 교무금을 내시곤 했다. 어머니는 금전 대신에 봉사활동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셨다. 그러다보니 우리 가족은 남성동 성당의 기둥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다 알아봤을 정도였다. 내가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그런 수준이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해 줄까? 남성동 성당을 다니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뉠수 있다. 김민희 대건안드레아 집안을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

 물론 나도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 뭐 어릴때다 보니 의무감에 열심히 다녔다. 어리고 순진했던 시절이었으니 성당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이런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애들하고 PC방도 가고 그러겠지만 92~94년에 그런게 어딨나 정말 촌놈들처럼 놀았지. 나름 성당 개근도 하고 정말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가 성당을 안가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로 중학교로 넘어가면서 중고등부 미사가 아침 9시에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일주일에 한번 있는 달콤한 수면시간을 버리라니, 이 무슨일이란 말인가 거기다가 90년대 초중딩들의 오아시스 디즈니 만화동산이 아침에 하잖아!!! 그럼 안가!!!! 
 또 한가지는 복사단이었다. 6학년으로 넘어가면서 남학생들에게는 미사에서 보조해주는 복사단을 맡겼다. 나는 근데 그게 싫었다. 근데 그때는 하기 싫다고 말할 방법이나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택한게 도망이었다. 미사간다고 하고는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걸린적도 있긴 했다. 마지막으로는 공부하겠다는 핑계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말짱 씨발 신을 저버린 대가를 뼈저리게 치루고야 말았다.

 비록 지금은 고향 성당도 많은 사람들이 바뀌었고, 나도 상주가 아닌 대전에서 성당을 다니고 있지만, 지금은 비교적 열심히 다니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성당의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과 조용한 미사를 싫어한다. 반대로 성당을 다녔던 사람들은 교회의 찬송과 간증을 견디지 못한다. 나는 성당을 다니기 시작해서인지 성당의 고요하고 조용한 느낌이 좋다. 성당 미사를 보고 나면 마음이 개운해질때도 많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고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무언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게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기에 보이지 않는 신에게서 위로를 얻고 기운을 내게 된다. 그들이 영생을 주거나 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주는 무형의 위로가 이번주도, 그리고 다음주도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되곤한다. 이번 주는 시간을 내서 평일 미사도 가봐야겠다.





 

열심히

 예전 직장에서 업무보고가 끝난 뒤, 오너가 나에게 소감을 물은 적이 있다. 별생각이 없던 나는 나름 결의에 찬 목소리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오너는 너털 웃음을 지으며 "허허허 열심히만 하면 안되지, 열심히 잘 해야지"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직장에서 다른 상사가 잘 지내냐고 내 옆의 인턴에게 묻자 인턴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상사는 바로 "열심히만 하면 안되지, 열심히 잘 해야지"라고 했다.  나는 내가 일 순간 잠깐의 데쟈뷰를 느꼈고 이런 저런 감정이 나를  스쳐갔다.
 
 돌이켜 보면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죽을만큼했냐 라고 묻는다면 답을 못할 수도 있지만, 나름 이거저거 안 가리고 열심히 했고, 그런것들이 지금 나를 만든 자양분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잘했냐고 묻는다면 나도 답을 못할거같다. 열심히 하고 잘 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때 배운 말 중에 가장 현실과는 다른 것은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과정이 중요하다"였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결국 무슨일이건 간에 모든 일은 결국에는 과정이 아닌 결과의 예술이고,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기에, 열심히 하든 안하든 그건 중요하지도 않은지 모르겠다.

 사실 이렇게 정리 안 되어가면서 말을 주저리주저리하는 이유는 별거 없다. 난 그저 열심히 했는데, 잘 하지 못했기에 아직 이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거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잠을 많이 자도, 길을 많이 걸어도 개운한 마음이 들지가 않는다.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열심히했고, 요령부린적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주중이고, 내가 속해있었던 곳, 내가 했던 일, 내 주변 사람 등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고, 항상 잘하기 위해 "열심히"했다. 근데 잘 하진 못했기에 이거 밖에 안되는지 모르지
 
 사실 나는 한창 아무것도 모르고 일만 해야할 나이이다. 한창 패기와 객기가 뒤엉켜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가며, 일에 매달리고, 그 일의 결과물이 나의 성과와 커리어가 되어 가야할 시기이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열심히 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결과물이 부족하다는 느낌과 계속되는 갈증과 억눌러지지가 않는 피해의식, 결국에는 안되나보다, 열심히 해도 안되겠구나, 라는 좌절감이 내 주변을 휘감고만 있다. 수많은 노력과 결과물들 보다, 한번의 작은 실수로 나를 평가하고 잣대를 들이미는 현실이 너무 억울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또 끊임없이 열심히 할 것이다.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보다 뒤져진 상태에서 출발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또는 앞지르려면 나는 정말 열심히, 두배, 세배는 달려도 될까 말까 하니 말이다. 지금 나에게 몰려오는 이 좌절감이 당분간은 계속 되겠지만... 나는 반드시 다시 털고 일어날 것이다. 아니, 일어나야만 한다.. 일어나자... 일어나야지...



.

긴 글

 어렸을땐 논술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나름의 생각을 풀어서 쓰는 걸 좋아했고, 작문 관련 과목은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최고의 장점은 글을 한방에 줄줄 써낼 수 있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래퍼로 따지면 가사를 종이에 쓰지않고 머리속에서 생각해서 줄줄 뱉어대는 스타일이라고 해야할까... 뭐 암튼 대신에 정리가 안 되고 글이 중간에 개발새발되고 의식의 흐름이 요상하게 가고 뭐 그러긴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전문 글쟁이도 아니고 이제는 뭐 그렇다 보니...

 한때 책을 많이 읽고, 책을 많이 만졌고, 책을 많이 꽂는 직업에 종사를 했지만 어느 순간인가 노안인지 뭔지 활자들이 잘 읽히지가 않기 시작했다. 집에는 책이 쌓인지가 꽤 되었고, 긴 글들이 아니더라도 호흡이 긴 글들은 잘 써지지도, 읽혀지지도 않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난독증인가 싶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논술형의 글을 쓰는게 쉽지 않아졌고, 블로그 등을 통해서 글을 쓰는 것도 쉽지가 않아졌다. 유려한 문장이 아니라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에도 쉽지가 않아져버린 것이다. 거기에다가 '아니 긴 글을 어떻게 귀찮고 힘들게 쓴데"라는 귀차니즘까지 겹쳐버리니  블로그나 SNS에 쓰는 글들 조차도 굉장한 노동으로 느껴졌다.

 사실 왜 이런지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일단 내가 생업을 핑계로 책을 읽지 않게 된 것이 첫째이고, 스마트폰이나 아님 영화, 스포츠 등 여러 영상매체에만 집중하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거 같다.
 근데 가장 큰 이유는 서술식 문장이 아닌 개조식 문장의 사용, 바로 이것인거 같다. 개조식문장을 써야하는 직업의 특성상 같은 의미의 단어를 쓰더라도 '개선', '향상', '재고'같은 단어들을 돌려막기 식으로 쓰게 되었고,  최대한 짧게, 최대한 간결하게 글을 쓰게 되다보니 긴 글을 읽고 쓰는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14포인트, 휴먼명조, 개조식, 들여쓰기와 내여쓰기, 어찌보면 지겹지만 앞으로 컨트롤 C,V 하며 주구 장창 써야하는 팔자가 되버린 것이다.

 기왕 맥북도 샀으니 앞으로는 긴 글을 써봐야겠다. 어떤 내용, 어떤 주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때로는 개인적이고, 때로는 대중적인 주제를 가지고 최대한 긴 호흡으로 긴 글을 써야겠다. 그리고 글을 써본 뒤, 다시금 읽어보면서 교정도 해보고 말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글 쓰는 법도 배워야겠다. 글을 좀 더 잘 쓰고, 계속 쓰고 싶다. 앞으로는 최대한 길게, 최대한 부지런히 써볼 생각이다. 당장 오늘 밤에 3~4개의 글을 한꺼번에 올릴지도 모르고...






 

맥북에어


 두 달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맥북에어를 샀다. 원래 사려던건 아이패드였는데, 쓰다보니 PC가 필요하기도 했고, 마침 데스크톱이 버벅거려서 용량저장고 이외의 기능을 못하고 있었고, 새로운 업무가 출장이 많아져서 노트북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맥북을 알아보게 되었고, 에어를 샀다. 원래는 새로나온 프로를 사려고 했지만 웬만한걸사려면 200이 훌쩍 넘어버리더라.

 뭐 노트북 하나 사는데 이러 서론이 기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맥북은 분명 이쁘다. 근데 이쁘기만 하다. 한글을 이용하려면 한글 맥버전을 구매하던가 해야하고, 파워포인트 대신 키노트, 엑셀 대신 넘버스를 쓸 줄 알아야한다. 아니면 윈도우를 돌려야되는데 돈주고 부트캠프를 사서 돌려야한다. 동영상은 mp4밖에 안된다. 물론 앱을 깔면 되지만, 나 같은 맥알못은 그거조차 쉽지가 않다. 바탕화면을 바꾸고 카톡 맥버전을 까는데에 근 2시간 가까이 썻다. 그렇다. 이게 나다. 아이팟을 쓰고, 아이폰을 쓰며, 작년까지 아이패드를 썼지만, 이거하나 하는데 이리도 힘이든다. 거기다가 비싸다. 일반 노트북은 80이면 덮어쓰지만, 에어는 그 배에 가까운 가격이 든다. 이렇게 까지 주절주절하는 이유는 내가 왜 이것을 사는지 나름의 자기 합리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돈을 씀에도 "이리이리해서 이것을 샀고 나는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한거다" 라는 자기 암시와 주문 말이다.

 이야기가 나온김에, 예전에 일하던 회사에 맥북이 있었다. 꽤나 무겁고 두꺼웠지만, 워낙에 이쁘기에 맥북가지고 일하는 간지 좀 내보려고, 맥북을 열었다. 하지만 당시 애플 제품을 써보지 못했던 나는 인터넷도 어디서 열어야하는지 모르고 버벅이다가 3분만에 덮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도 간지나게 카페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인터넷하고 사진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고 하리라. 기회가 되면 이걸로 음악도 만들어보고, 간지나게 맥 제품을 써보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다.
 맥북을 사서 화면을 키자 나오는 애플마크와 "뙁"하는 부팅소리가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이제 진성 앱등이 최상급 앱등이에 들어갔구나. 이제 이걸로 주말에 일도 좀 하고, 기회되면 이걸로 동영상 강의도 보고, 뭐 영화나 음악도 좀 듣고 그렇게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이걸로 가끔 인터넷을 하긴 한다. 하지만 대다수를 기존의 데스크탑에서 물건을 사고, 영화를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글은 다행히도 맥북에서 쓴다. 하지만 데스크탑으로 농구를 보면서 나름의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 카페에 들고 가고 싶었지만, 바깥은 춥고 이불속이 제일 편하다. 한글 작업은 서툴러서 페이지로 겨우 작성한뒤, 워드로 호환저장했다. 다행히도 연구계획서는 한글 뷰어로 봤다. 그래도 나름 노력했다.
 
 사람이 동물과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환경에의 적응이라고 했다. 지금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나 역시 맥북을 쓰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적응을 해 나가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는 일들 모두가 합리적이고 현명할 순 없다. 어떨때는 이유없이 무언가를 할때도 있다. 그것이 이익을 보는게 아님에도, 편한길이 아님에도 상관없이 무언가를 할 때가 있다. 나보고 왜 비싼돈주고 맥북사서 썩히면서 이런 똥글을 쓰고 있냐고 말해도 딱히 해줄말은 없다. 사람의 선택이라는게 항상 주관적 일 뿐, 그것이 합리화가 되고, 일반화가 되면서 객관화가 되기 때문에 말이다. 언젠간 내가 한 행동들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돌아보면서 생각을 하겠지만, 항상 옳은 행동만 할 순 없는게 사람인거 같고, 나이가 먹으면서 더 심해진다는 느낌을 요즘 받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하나...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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